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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 김성곤 선생은 오늘의 국민대학교가 있도록 발전의 초석을 다진 분이다. 해공 선생이 서거한 후, 1959년 재계의 중진이었던 성곡 김성곤 선생이 재단법인 국민학원을 인수함으로써, 본교는 중흥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육성이 과제

성곡 선생이 즐겨 썼던 “일하자 더욱 일하자 한없이 일하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휘호는 바로 시대의 과제를 스스로 내면화한 것이었다. 성곡에게는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대한 열망과 그를 위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이 일관되게 통하고 있다. 성곡은 민족과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 지배로부터의 민족해방과 해방 후 새로운 근대국가의 건설과 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몸소 깨달은 것이었다. 성곡은 유능한 인재는 반드시 지성과 실용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교육은 국가나 지배 권력의 관리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학의 분위기 속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해방 후 최초의 사립대학인 국민대학교를 인수했던 것이다.

과감한 투자로 재단의 안정을 확보

성곡은 과감한 재원의 투자로 재단의 안정을 확보하고 국민대학교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국민대학교를 발전시켜 어느 대학에도 손색없는 대학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고 그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은 네가지 육영이념을 제시했다.

성곡의 전체 삶과 인품의 저변에 흐르는 신념 내지 육영이념은 다음의 네 가지 - 민족주의, 인본주의, 문화주의, 산업주의 - 로 요약할 수 있다

민족주의 - 성곡의 민족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 나라 잃은 민족의 비애를 몸소 경험한 성곡의 머리 속에는 민족 없이는 개인이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개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민족이 번영하고 발전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그가 경영한 모든 사업을 민족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사업을 통해서 모은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과 사회의 것이라고 믿었다. 성곡은 모든 자신의 자산은 민족과 사회의 것이며 자신은 단지 그 돈을 일시적으로 보관해서 관리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돈을 쓰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는 개인의 안락이나 사치에 돈을 쓰는 것을 죄악시하고 민족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묵묵히 이를 실천하였다.

인본주의 - 성곡의 인본주의는 인간의 본성 또는 사람이 사람된 도리로서 당연히 지녀야하는 덕성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본성 또는 사람이 사람된 도리로서 당연히 지녀야 하는 덕성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덕성의 내용도 사람에 따라서 강조점이 다르고 우선순위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의 많은 덕목 중에서 성곡 선생이 특히 중시하고 강조한 것은 소박ㆍ성실ㆍ근면ㆍ정직 등이다. 성곡 선생은 사치와 안일을 죄악으로 믿고 성실성이 없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성곡 선생의 인본주의의 내용이다.

문화주의 - 성곡의 문화주의는 민족문화의 육성과 발전을 의미한다.

성곡이 학술과 언론의 두 문화재단을 창설하여 학자와 언론인을 원조해 온 것은 바로 성곡이 지닌 문화주의의 일면이다. 그는 민족의 생명은 그 민족이 지니는 문화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민족문화의 창조, 육성과 발전의 중요한 담당자인 학자와 언론인을 키우는데 노력했다.

산업주의 - 성곡의 산업주의는 민족기업의 육성과 경영을 통해서 민족과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민족자본의 축적 없이는 민족의 자존과 번영이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성곡에 있어서 기업의 목적은 단순히 이윤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민족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어떠한 공헌을 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리고 산업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서는 우수한 산업인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성곡의 산업주의에 바탕을 둔 육영이념이었다.

성곡 김성곤 선생이 국민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자유와 지성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과 집념' 때문이다

성곡이 국민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과 집념" 때문이며, 여기서 대학이란 지성을 의미하며, 지성은 육영이념의 중요한 바탕이다. 성곡은 사물을 알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춘 개인이라야 인격을 형성할 수 있고, 그러한 개인이 존재해야만 국가, 민족, 사회의 유지ㆍ발전이 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성곡의 육영이념의 또 다른 바탕은 자유이다. 이는 지배 권력이나 국가의 관리로부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성곡의 신념을 말한다. 국가의 관리로부터 자유로운 사학의 전통이 영국과 미국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다는 확신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학 생활에서 더욱 굳어졌기에 "대학은 자유"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