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 캠퍼스 > 국민NEW&HOT > 언론속의 국민   RSS

[강윤희의 러시아프리즘] 사라지는 동토의 얼음, 축복인가 재앙인가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카테고리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러시아에게 축복일지 저주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러시아인들의 삶의 조건, 경제적 셈법의 조건이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사진은 러시아 북극 지역에 떠 있는 빙산. ©게티이미지뱅크

가끔 러시아에도 여름이 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아마도 몹시 춥고 눈과 얼음에 뒤덮여 있는 러시아의 겨울 풍경이 너무나 강렬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러시아에도 여름은 있다. 단지 짧고 우리네 여름처럼 후덥지근하지 않을 뿐이다. 러시아인들도 여름에는 전원주택 격인 ‘다차’에 가서 한가로운 휴가를 즐기거나 더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해외 여행을 간다.

반면에 러시아의 겨울은 정말 지독하다. 북극에서 형성된 추운 바람이 거칠 것 없이 러시아 북부와 시베리아로 불어온다. 북극에 가까운 러시아 북부지방은 겨울에 평균 영하 40~50도까지 온도가 떨어진다. 금, 은, 다이아몬드의 산출지로 유명한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치아는 영하 50도까지 기온이 내려간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옆에 있는 이르쿠츠크의 경우 1월 평균 온도가 영하 17.8도다. 시베리아의 다른 주요 도시들도 대체로 1월 평균 영하 20도 내외의 혹한을 경험한다.

오래전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났던 적이 있다. 시베리아나 북극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 조건이 좋은 모스크바도 겨울이 매섭기는 마찬가지였다. 9월 말, 10월 초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겨울은 거의 4월까지 계속되었다. 펑펑 쏟아져 내린 눈들이 켜켜이 얼어서 거리의 보도블록 위로 20㎝ 높이의 얼음길이 생겼다. 겹겹이 옷을 싸매고 나가도 때론 눈물이 날 정도로 추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겨울철 러시아 출장은 피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도시들이 내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무엇보다 거리에서 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눈들이 얼지 않고 녹아내려 흙먼지와 뒤섞이는 바람에 거리를 질퍽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해빙기 봄날의 여느 러시아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동토의 왕국’ 러시아에서 이상기온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는 벌써 꽤 되었다. 모스크바 여름에 불볕더위가 오는가 하면, 겨울에 서울보다 따뜻한 날이 지속되기도 한다. 2월 현재 영상을 살짝 웃도는 날씨이고 밤에야 영하 2~3도로 내려간다. 도대체 모스크바의 겨울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30년간 평균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2월은 최고 –4도, 최저 –11도여야 맞다. 모스크바만이 아니다. 북극 지방인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에서는 2016년 여름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갔고 75년 만에 탄저균이 돌아 순록들이 집단 폐사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18년 북극해 안에 있는 노바야제믈랴섬에서는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곰들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와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에는 시베리아에 30도 이상의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다가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은 시베리아 및 극동 지역 타이가 숲으로 번져서 300만헥타르의 삼림을 태웠다. 이젠 이상기온이 더 이상 이상기온이 아니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러시아의 급격한 기후변화를 보면, 지구 온난화의 과학적 진실성 여부를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러시아만큼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징후를 확실히 보여주는 나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러시아에서 지구 온난화 현상은 다른 나라들보다 평균 2.5배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기후변화는 러시아인들에게 심각한 위협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러시아 정부는 이미 산불 및 홍수의 발생, 농업의 위기, 생태계 파괴로 인한 동식물군의 피해, 전염병의 발생 등을 위협이라 인식하고 있다. 물론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동반한다. 얼어붙은 동토가 녹자 러시아 북극 지역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겨울에는 영하 40~50도까지 온도가 내려가고, 도로와 철로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곳 동토의 땅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북극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가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들이 착수되었다. 야말반도에서 가스를 채굴해서 LNG로 수출하는 야말LNG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에 더하여 러시아 정부는 쇄빙선을 이용하여 북극항로를 개발하고자 준비 중이고, 한국 대우조선은 쇄빙선 수주를 따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러시아에게 축복일지 저주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러시아인들의 삶의 조건, 경제적 셈법의 조건이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과거 경제성이 떨어져서 시도하지 않았던 북극 지방 개발 프로젝트가 이제는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북극 지역의 가스 개발 프로젝트는 새로운 인력을 이들 지역으로 끌어들이고 도시를 형성할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은 과거 제정 러시아 시절이나 소련 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강압적, 폭력적이지 않고 경제성에 입각한 자발적 과정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가 얼었던 동토를 녹이듯이, 러시아의 새로운 삶의 조건은 러시아 특유의 차가운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분명한 것은 러시아가 ‘해빙’ 중이라는 사실이다.

원문보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2141026340717?did=NA&dtype=&dtypecode=&prnewsid=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2020-02-17 10:34
목록 출력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