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기업가 정신 대학
1980년대 종합대학 승격 이후 학과가 개설되고 학생 수가 증원되면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편의시설이 확충되었다. 먼저 1981년7월에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직장예비군으로 편성되어 총장 책임 하에 교내자체 교육훈련을 받게 되었다.1981년 9월에는 학생복지시설의 증진의 일환으로 뒷동산(중앙도서관 뒤, 현재 조형관) 산책로를 개방하고 길목에 야외휴게소인 북악원을 개관하고 서성택 이사장의 쓴 「북악원」 현판이 내걸었다.그 뒤 북악원은 1990년 8월 재개장하여 80석 규모에 오디오·TV시설을 갖추고 전시 공간, 음악·영화 감상실 등으로 활용하게 됐다. 1982년 3월 학생들의 어학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어학연구소에서는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Sound Library(49석)과 V.T.R Studio(80석)를 확충했다. 1983년 7월 공학관 1층에 전자계산소를 열어 주기억 6MB, 보조기억 908MB의 컴퓨터를 설치하여 학생들의 수강신청, 성적처리, 신입생명단 등을 전산처리하고, 방학 중에는 학생과 교직원을 위하여 컴퓨터 특강을 개설하여 컴퓨터 보급에 기여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사법·행정·외무·CPA·기술고시 등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임시기숙사인 ‘형설재’를 마련했다.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학술의 심오한 연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건전한 정신과 이상을 배양시키고자 한 것이다. 국민대학교가 야간대학으로 출발한 것은, '생활상 사정의 소치로 주간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허다(許多)한 구학(求學)의 청년에게 최고 학술을 연구하는 기회를 주어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추구'하는데 있었다. 이 점에서도 국민대학교는 '국민의 대학'이자 '민족의 대학'인 것이다.